라오스를 지켜온 힘 -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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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를 지켜온 힘 - 라오인

라오는 인도차이나에서 유일하게 내륙 국가다. 사방이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민족들로 둘러싸였다. 중국, 베트남, 버마, 수코타이(태국 최초의 통일 국가), 크메르 왕조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나라들이 늘 라오를 위협했다.

그 사이에 식민 시대를 지나 인도차이나 전쟁(미군이 그토록 축소하려는 베트남전쟁은 알고 보면 인도차이나 전쟁에 가깝다)까지 겪었으니 이 평화로운 나라는 한시도 조용할 때가 없었다.

사면이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고, 인구는 이웃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적들로부터 방어하기도 여의치 않은 나라가 라오였다. 그러나 그 틈 사이에서 라오인들은 지금도 한 나라를 유지한 채 라오인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라오스여행-전쟁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처럼

인도차이나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라오 사람들이 그 여타 나라 사람보다 순박하고 착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마치 단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그 순간 드는 의문 하나! 어떻게 라오라는 나라가 그토록 호전적인 국가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다섯 나라 중 하나도 만만한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인도차이나 역사 자료를 스크랩하고 작가의 상상을 동원해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먼저는 역설적이게도 지정학적 위치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미얀마나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은 완충 지대로서 라오를 선택했을 것이란 점이다.

생각해 보자. 내 집 옆에 바로 사나운 맹수가 사는 것보다는 나름의 안전 지대가 있음으로써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거기에 라오는 평화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자신들을 침략할 위험이 없다는 것도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하나 이유로는 70%나 차지하고 있는 산악지대를 꼽을 수 있다. 지하자원도 별 볼일 없는 산악 지대 라오는 인구도 적어 생산성이라곤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뿐인가. 그 산악 지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68개 민족이나 되는 다민족 국가는 이웃 나라에도, 유럽 식민 열강들에게도 관심 밖의 대상이 되었다.

라오스-환율

다민족성은 화합할 수 있는 힘

마지막 중요한 하나는 ‘라오에 사는 라오인’들의 심성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갈등이란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등 공동체에서는 늘 일어나기 마련인 현상이다. 그 갈등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쟁이며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라오인들은 그 갈등 속에서 묵묵히 그 갈등을 껴안았을 것이라고 상상되어졌다.

싸워서, 빼앗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때리고 빼앗는 손을 가슴으로 안아서 평화를 이뤄낸 힘. 그것이 라오는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 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라오 헌법 전문엔 “다민족인 라오 인민은 수천 년 동안 사랑하는 국토에서 존재하고 발전해 왔다”라며 다민족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라오에서는 소수 민족이 독립을 위해 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추후 몽 족에 관해서는 따로 설명하겠다. 여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

하다못해 땅을 주고 집을 주면서까지 저지대로 내려오라고 해도, 지금 사는 곳에 만족해 선조들이 살아왔던 고산 지역에 소수 민족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지금의 라오인들이다.

물론 라오 역시 근대 이데올로기에 갈등을 겪기는 했다. 하지만 공산화된 국가에서 자행됐던 숙청은 여타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미비했다.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산주의 정권은 라오에서도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이 대부분인 라오인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이에 공산 정권은 신자들의 시주를 허용했던 것이 라오다. 베트남, 캄보디아는 사원의 땅을 빼앗고 승려들을 쫓아냈지만, 라오에서만큼은 승녀들이 텃밭을 일구면 종교 활동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