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후에 왕릉을 거닐며-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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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선교 탄압 역사

뚜득 왕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의 주인으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민망 왕 때부터 시작된 기독교 탄압은 뚜득 왕에 접어들어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이 베트남을 공격한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던 선교사 탄압은 베트남 근대사의 아픈 과거로 남아 있다. 

뚜득 왕이 즉위한 1848부터 20여 년간 처형당한 사람이 서양인 선교사 25명, 베트남 사제가 300명, 평신도가 2만 명에 달했다. 그 이후 한동안 기독교인은 베트남의 주류 사회에서 멀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 카이딘의 능은 호불호가 매우 확실했다. 일반적인 왕릉과는 확연히 다른 외관이 여행자를 시선을 끌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와 왕궁의 설명을 읽어 보고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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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카이딘 왕릉

카이딘 왕은 응우옌 12번째 왕 1916년부터 1925년까지 재임한 20세기 왕이다. 그는 프랑스에 적극 협력한 왕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왕릉은 베트남식과 유럽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콘크리트를 소재로 한 건축 양식을 띤다. 

거기에 신화적인 점을 강화하기 위해서 힌두 양식까지 가져왔다. 건축 자재는 프랑스와 일본에서 가져 와서 지었다. 왕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건물인 꿍티엔딘은 더 가관이다. 현란한 색상의 도자기와 유리 조각들로 장식되어 건물을 보면 나라가 망하고 있는데, 이런 사치를 부리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기분이 더 얹잖아 지기 전에 왕릉을 나왔다. 외벽이 검게 변해 있는 모습이 괴기스럽게까지 보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왕룽 투어를 할 경우 카이딘 왕릉은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자존감이 강한 베트남 사람들에게 나라를 팔아 호의호식한 왕릉은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 듯 싶었다. 카이딘 왕릉은 웬만하면 처음 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본다면 여행의 낭만이 그만큼 줄어들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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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이씨의 시작은 베트남?

주위에 화산 이씨를 만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화산 이씨를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베트남 이야기에 웬 화산 이씨냐고? 그 화산 이씨가 베트남 왕족의 피를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베트남 Li 왕조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잃는다. 마지막 왕자인 리롱뜨엉(이용상)은 바다로 탈출해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에 상륙했다. 이용상은 다행히 한자에 능숙했기 때문에 필담으로 자신이 안남국의 왕자임을 설명했다. 

고종은 비록 정권을 빼앗긴 나라의 왕자였지만 예우를 갖춰 이용상을 화산군으로 봉하고 화산 이씨라는 성씨를 하사했다고 한다. 원나라 침입 때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몽고군과 싸워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남한에는 수 천 명의 화산 이씨가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