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달랏의 쑤언 흐엉 호수를 거닐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를 함께 여행해요! 숨겨진 여행지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Let's travel to asian countries and south korea. The hidden destination awaits you.

달랏의 8월은 달콤했다

숙소를 정하고 배낭을 내려놨다면 그 여행지에서의 여행이 반은 끝난 셈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슬리퍼를 싣고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다.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싣고 종종 걸음으로 거리를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슬리퍼를 싣고 거리에 나서면 그제야 그곳이 온전히 보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의 작은 변화지만 사람의 몸이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다는 것이 때론 놀랍기까지 할 때가 있다. 달랏을 대표하는 곳이라면 1500미터의 고산 도시에 넓게 펼쳐진 쑤언 흐엉 호수다. 쑤언 흐엉은 한자어로 춘향이란 뜻으로 17세기 활동했던 유명 여류 시인의 이름이다. 

8월 한 여름에 있다가 바로 가을, 찬바람을 맞는 기분을. 달랏은 딱 그런 맛을 선사했다. 아 이곳이 정말 파라다이스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오는 가을바람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인들이 향수병을 이기기 위해 사이공(호치민)을 벗어나 이곳 달랏에 휴양지를 건설했을까.

여러 가이드 책에서는 달랏을 뭐 프랑스의 파리라든지 그럴듯한 애칭을 갖다 붙이고 있다. 그런 애칭을 가지고 달랏을 찾는다면 분명, 실망하고 말 것이다. 솔직히 그런 유럽식의 분위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베트남-달랏

오토바이 물결조차 한가로운 베트남 달랏

하지만 분명 베트남의 여타 다른 도시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오토바이의 물결은 달랏도 빼놓을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여유롭고 덜 전투적이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나 몸짓 역시 덜 거칠었다.

달랏 사람들이 여유로운 이유 중에는 마을 중앙에 넉넉히 자리 잡고 있는 쑤언 흐엉 호수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상쾌한 바람으로 이미 넉넉해진 마음은, 조금도 급한 마음 없이 발길 닿는 데로 걸었다. 자연스럽게 달랏의 심장 쑤언 흐엉 호수가 만났다.

신혼여행을 온 듯한 커플부터 손자의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 내공이 충만한 서양 여행자,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집단의 청소년들. 저마다 호수가 만들어 내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호수를 조금 걷다보니 젊은 청년 네다섯이 원을 그리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금은 조용한 호수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주위의 평화를 깰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겁이 많은 나로서는 저런 분위기의 청년들과는 피하는 것이 일반적.

살짝 돌아가려는 순간, 한 젊은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나를 보는 눈에 호기심과 친절한 웃음이 가득했다. 눈웃음을 주고받는 순간 일제히 나를 보더니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걸음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달랏의 바람 때문에 경계심이 무장 해제되었던 것 같았다. 그들은 베트남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 소주처럼 투명한 빛깔이었는데 투명한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 조금씩 나눠 마셨다. 우리 소주가 약간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데 반해 베트남 소주는 조금 더 순수한 술맛에 가까웠다. 

베트남여행-달랏

만남은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

녀석들과 나는 몸짓과 손짓으로 충분한 대화가 오갔다. 한 녀석이 나의 나이를 듣자 놀라면서도 팔짱을 끼고 형이라고 애교까지 부리자, 다른 녀석들은 우리를 게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졸지에 게이 커플이 된 우리는 사진도 찍으면서 친하게 돼 버렸다. 그의 직업은 오토바이(세옴) 운전사. 오토바이로 사람을 태워가면서 돈을 벌었다. 그는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제안했고 자신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친구 녀석들도 그게 좋겠다며 부추였다. 순간적인 호의에 어쩌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주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거참. 이런 경우가 어쩌면 제일 난처하다. 내 발로 여행 에이전트 사무실을 찾아가 프로그램을 고르고 비용을 지불하면 제일 편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호의를 뿌리치고 됐다고 하기에도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조심스럽게 반나절 비용을 물어봤다. 눈치 빠른 녀석이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베트남 말로 뭐라고 그러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손사래를 처댔다. 이럴 줄 알았지만 내심 속은 불편했다.

다음날 그는 게스트하우스에 나타났고 우리는 오후 시간을 같이 지냈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호숫가. 조금 걷고 싶어 호숫가에 내렸다. 물론 내 주머니에는 미리 준비해 놓은 돈이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낌새를 눈치 챘는지 그는 나를 내려놓자 저만치 멀리 가 손을 흔들더니 가버렸다.

눈치 빠른 것이야 한국 사람이 최고겠지만 베트남 사람도 이에 못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지만 떠나는 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카운트에는 나를 위한 비닐봉지가 있었다. 바나나 몇 개와 사과 한 개는 누가 놓고 갔는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