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후에의 하루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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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후에의 하루

베트남 후에서 장기간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루틴이 생겼다. 하루의 루틴도 있고, 도시에 도착했을 때부터 떠나올 때까지의 루틴도 생겼다. 하루의 루틴이라야 자는 시간과 상관 관계가 있었다. 특별히 술을 좋아하거나 클럽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도, 여행을 왔어도 늘 자는 시간만은 늦은 시간이었다. 브런치를 하기에 딱 좋은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여행지에서의 루틴은 게스트하우스부터 시작됐다. 어차피 최소 2주 정도는 한 도시에 머물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하루 이틀은 숙소와 인근 편의점을 익히고, 걸어서 다녀올 곳을 한 군데씩 여행하는 식이다. 도시 외곽이나 투어에 참여해야 하는 여행지는 최대한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숙소나 카페서 마음 맞는 여행자를 만나면 동행하는 편이 좀 더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느 날 아침부터 독일 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인 특유의 선 굵은 예의가 눈에 띄었고, 대화가 몇 번 이뤄졌다. 온종일 구름이 예고된 날, 그녀가 시내 구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간 말한 시내 구경이라야 왕궁, 깃발탑, 동바 시장, 빅씨 마켓이 전부였다. 이미 두 번 갔다 온 터라(게스트하우스에 오래 있다 보면 종종 한국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가이드를 해주는 경우가 생긴다) 딱히 감흥은 없었지만, 뭐 할 것도 없었으니 좋다며 따라나섰다.

베트남-후에

여행자 거리를 나서며

베트남 후에의 여행자 거리는 오늘 둘러볼 왕궁과 다리 하나를 두고 마주 본 위치에 있었다. 왕궁을 중심으로 구도시라고 한다면 다리 건너가 신도시라고 보면 됐다. 다리를 건너려니 며칠 내린 비로 수량이 상당히 많아졌다. 진갈색의 흙탕물은 사납게 흐르고 있었다.

해가 뜨지 않은 늦가을 훼는 걸어서 다닐 만큼 산뜻했다. 동행자가 낯선 이방인이라는 점도 왠지 날씨와 잘 어울렸다. 이미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이도 눈에 들어왔다. 살짝 갈증을 느낌 즈음 왕궁에 도착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서양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거대한 성의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동양의 궁에 감탄하는 것이 놀랍다.

요란하지 않게 호기심을 보였던 그녀가 론리플래닛을 꺼내 본격적으로 역사학자가 될 자세를 취했다. 서양인이 그것도 독일인이 이런 눈빛과 자세를 취할 때는 절대적으로!!! 피하는 것이 오랜 경험에서 취득한 여행의 지혜였다.

두 시간 자유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무슨 얘기인지 바로 이해한 그녀는 나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고 바로 론리플래닛에 시선이 꽂혔다.

베트남-왕궁

베트남 왕조의 이야기

응우옌 왕조 역사의 대부분을 같이 한 왕궁은 후에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왕궁은 길이만도 10km나 되는 상당의 규모의 성이다. 1804년 착공해 1833년에 완공될 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 왕궁이었다. 그런데 설계자는 프랑스인이었다고 한다. 성을 지키기 위한 해자가 성 밖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후에 왕궁의 해자는 성 밖과 안에도 있어 이중삼중의 방어 태세를 갖춘 점도 건축학적으로 특이한 점이었다.

왕궁의 정문은 조금 있다 둘러 볼 깃발탑을 마주 보고 있는 위치에 있다. 정문 응오몬 문을 바라보면 지붕 모양이 다섯 마리 봉황을 연상시킨다고 이름 붙여진 응우풍이란 정자가 있었다. 왕이 그 정자에서 과거 급제자를 발표해, 권위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1945년 8월 30일 바오 다이 왕은 응우풍에서 호치민 임시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퇴위했다. 응우풍은 140년 왕조가 영광과 퇴락을 동시에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볼거리라고 말하기도 뭣한 것이 깃발탑이다. 하지만 베트남 현대사에서 이 깃발과 깃발탑이 서 있는 곳은 사회주의 베트남의 시작을 의미했다. 37m다. 1986년, 북부 베트남 공산당이 베트남 후에를 점령했다. 그리고 당시 만들었던 붉은색의 금성홍기가 현재 베트남의 국기가 되었다. 때문에 후에 사람들에겐 상징처럼 여겨졌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처음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한 금성홍기를 꽂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37m의 깃발탑은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깃발이라고 한다.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