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후에 왕릉을 거닐며-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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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통일 왕조의 기록

후에 왕릉을 향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맛은, 택시를 타고 거리 달렸을 때나, 버스를 타고 봤던 도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작은 볼거리라도 나타나면 운전자는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는 덥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단체로 움직이지 않으니 왕릉에 내려서는 오롯이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최초의 통일 왕조 왕들은 자신의 능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여행자에게 보여줬다.

처음 들렸던 왕릉은 민망 왕릉. 왕릉에 들어서면 이유 없이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줬다. 응우옌 왕조 2대 민망왕은 프랑스를 배척하고 중국의 유교 문화를 선호했던 왕이었다. 때문에 왕릉 역시 풍수지리설에 입각해서 지어졌다니, 우리 왕릉에 익숙한 나에게는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1820년부터 20년 간 통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왕조의 틀을 잡은 왕이었다.

베트남-후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어진 왕릉

민망 왕은 우리와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아들 78명, 딸 64명, 도합 142명의 자녀를 둔 인물이다. 그의 후사를 잇는 능력은 오랫동안 복용했다는 ‘민 망 탕’에 비밀이 숨어 있다. ‘민 망 탕’은 각종 약재를 넣은 술인데 훼 사람들은 가정집마다 이 ‘민 망 탕’을 제조해서 마셨다 한다.

이 ‘민 망 탕’의 주재료가 ‘고려인삼’이다. 질 좋은 민 망 탕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인삼이 필요한데, 베트남 사람들은 고려인삼을 최상품으로 꼽았다고 한다. 지금도 훼 특산품을 파는 곳에 민 망 탕을 만날 볼 수 있다. 민망 왕은 공이 큰 신하에게 내리는 상급으로나, 연로해 아픈 신하에게 고려인삼을 몇 뿌리씩 하사했다고 한다.

응우옌 왕조 중 뚜득 왕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시에 조예가 깊어 4000천 편의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소양이 충만했던 왕이었다. 뚜득 왕은 응우엔 왕조의 왕 중에서 가장 재임 기간이 길었던 왕이기도 하다. 1848-1883년. 4대 왕, 하지만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기간에 왕좌에 앉아 있었던 비운의 왕이기도 했다.

왕릉 공사에 참여한 인부 학살

그래서일까. 뚜득 왕은 자신이 죽기 16년 전에 이미 지금의 뚜득 왕릉을 완성했다. 자신이 직접 설계까지 했다. 왕릉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쌓여 가득했고, 작은 섬을 지닌 인공 연못 르우끼엠은 왕릉의 깊이감을 더했다.

뚜득 왕은 자주 왕궁을 떠나 배를 타고 자신이 죽으면 묻히게 될 능으로 와 낚시를 하고 시를 썼다고 한다. 104명의 왕비를 두고 수많은 궁녀를 두었지만 후사는 없었다. 50명의 요리사가 50가지 요리를 만들면 50명의 궁녀의 시중을 들었는가 하면, 연꽃잎에 밤새 맺힌 이슬을 모아 차를 끊여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뜨득 왕은 죽어서 이곳에 안장되지 않았다. 시신은 다른 곳에 안장됐고,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에 참여했던 200여 명의 인부 모두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