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박하 - 잃어버린 추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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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5일장 여행자를 반기다

사파와 박하를 여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파를 거점을 두고 여행을 한다. 일요일 박하 시장을 보고 사파로 되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는, 라오까이에서 밤기차를 타고 하노이로 떠나게 된다.

박하는 사파보다 작은 마을 마을이긴 하지만, 지형상 일요시장에는 더 많은 고산족들이 사방에서 박하로 내려온다. 때문에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도 박하를 향한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5일장에 나가 본 추억이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박하에 가보자.

박하는 사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험한 산속에 위치에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산을 몇 개나 넘어가서야 나타난 박하는 이미 장터의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저마다의 언어로 마냥 신나 있었다. 나만 뚝 떨어진 독립된 공간에 와 있는 기분조차 들었다.

차가 세워졌던 대로를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시간은 어느덧 7살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갔던 문경의 어느 작은 5일장이 나타났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형형색색의 옷차림만 다를 뿐.

베트남-배낭여행

베트남 박하, 추억의 보물 창고

타임머신을 타고 뚝 떨어진 느낌이 이런 것일까. 양지 바른 곳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이며, 순댓국에 베트남 소주로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며… 추억되어지던 것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아침 일찍 산에서 내려와 끼리를 챙기지 못한 아낙들로 국수집은 가득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 굳이 추억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았을 할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침 일찍 손자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르셨던 당신은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안아주셨다.

옆 동네 친구를 만나셨을 때는 가족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으셨던 큰 웃음으로, 친구의 거친 손을 잡으셨던 기억. 순댓국을 먹을 때는 비계는 당신이 다 드시고, 살코기만 챙겨주셨던 숟가락. 5일장을 다녀온 뒤 밥상에 올랐던 고등어자반. 그 추억이 마치 어제같이 생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어린 추억을 가득 안고 박하 시장을 걸었다. 고산에 사는 모든 소수민족은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산족들은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특유의 문장이나 형상, 색상 등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박하나 사파의 장터에 유난히 형형색색의 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은 이유였다.

실을 파는 한 가게에 초등학교 2학년 쯤 보이는 여자가 아이가 엄마를 도와 실을 팔고 있었다. 마치 유럽 어느 유명한 선데이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처럼, 호기심과 당찬 눈빛을 띠었다. 엄마와 딸을 함께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아이에게 사진을 찍자는 눈인사를 건네자 방긋 웃으면 좋다는 표현을 했다.

베트남-박하시장

고산족의 삶을 훔쳐보다

하지만 순간 당황. 소녀의 눈에는 자신의 엄마가 가장 예쁜 여자였나 보다. 사진은 예쁜 여자가 찍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를 잡아 끌어 카메라 앵글 속으로 집어넣었다. 원하는 사진은 실패했지만, 사진을 찍고 보니 엄마를 앵글 속으로 밀어 넣었던 소녀의 손이 명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미안하게도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엄마라고 생각하는 소녀는 내가 되어 있었다.

잠시 시장 풍경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유인즉, 시장에 나온 고산족들은 여행자의 시선이나 사진 찍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대도시 사람들보다 더 무심하게 여행자를 스쳐갔다. 이상하리만치 박하시장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 있었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온 물건을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정신이 없었다. 여느 관광지처럼 여행자라고 특별한 시선을 주는 이는 없었다. 고맙게도!!!

새벽부터 이 산 저 산에서 박하시장을 향했을 사람들. 그들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의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몇 시간 산을 내려 왔으리라. 그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허기진 배도 채워야 하고, 친구와 만나 소주도 한 잔해야 했다. 그 누구보다도 오늘이 소중한 하루였다. 이방인을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해가 지기 전에 떠나야 하지 않는가.

무심하게 나를 지나치던 고산족 일상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그립다.